말 그대로 나는 거의 봉사였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을(당시에는 국민학교였음, 안경 쓴 거 약간은 부의 상징) 들어가면서부터 안경을 썼으니 만 7세가 채 되지 않은 나이였다. 심각한 선천성 질병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눈이 나빴다. 엄마의 주장에 의하면 유치원 들어가기도 전에 두꺼운 백과사전 안의 깨알같은 글씨를 읽겠다고 전집을 손에서 놓지 않아 눈이 나빠진 거라며…(엄마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이 천재라고 믿는 불치병이 있음) 아무튼 50 중반인 지금까지 나는 세상이 그냥 그렇게 흐리고, 명확치 않으며, 평생 안개가 낀듯 뿌옇게 눈이 나쁜 채로 살았다.

콘텍트 렌즈 끼고 그 위에 안경=======

아무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눈이 나쁜지는. 얼마나 이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못 보고 사는지는. 아! 딱 한 사람 알듯. 검안의? 근데 그 의사도 본인이 눈 나빠보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모를듯, 안 그래? 오롯이 자기 자신만 안다. 100가지 증상이 있다 한들 머리 아프고 속 쓰린 것 본인만 알듯이 말이다. 거기에 팬데믹까지 합세해 할 일 없이 집에 누워 폰만 쳐다보고 있기를 몇 달, 아마도 이 시기에 눈 더 나빠진 사람 비단 나 뿐만이 아니리라. 어두운 방에서 폰 오래 쳐다본 죄로 눈 좀 나빠진 벌 받는 것까진 좋은데, 원래 안 좋던 오른쪽 눈이 콘텍트 렌즈 시력 -14에서 -25로 뚝 떨어지면서 일상 생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들어는 봤나 -25??? 사실 이것도 그 이상은 측정의 의미가 없어 검안의가 대충 말해준 숫자임. 미국과 한국은 시력 검사 단위가 다른데 한국은 0.5, 1.0, 1.5 등 소수점으로 나타내는 반면 미국식은 20/20, 20/40처럼 분수로 나타낸다. 이 말은 20피트에서 보여야 할 것이 20피트에 보인다는 말로 정상시력인 1.0을 의미한다. 20/40이라고 하면 40피트에서 보여야 할 것이 20피트까지 다가가야 보인다는 의미로 시력이 0.5라는 말이다. 나는 오른쪽 눈이 20/250(하하하), 왼쪽 눈은 20/90, 그런데 문제는 오른쪽은 초고도 근시, 왼쪽은 심한 난시였다. 

교정방법은 먼 곳을 보기 위해 콘텍트 렌즈를 끼고, 가까운 곳을 보기 위해 그 위에 안경을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겨우 나오는 시력이 0.6 정도였다. 나처럼 렌즈 끼고 그 위에 다시 안경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미국 와서 알았다. 한국은 이미 라식, 라섹 수술이 보편화 돼 대부분 교정을 하고 살지만 미국은 아직까지 안경 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 나는 왜 라식, 라섹 수술 안했냐고? 아까 말한 초고도 근시, 초고도 난시는 수술 못함. 아무튼 평생을 렌즈끼고 안경끼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는데 존경하고 또 사랑해 마지 않는 나의 주치의 문장석 내과 원장님의 권유로 리퍼를 받아 백내장 수술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백내장이란 무엇인가=======

50대 이후에 주로 발병해 60대는 60% 70대의 90% 이상 대부분이 질환을 앓고 있다는 백내장은 한국에서 노인 수술률 1위를 차지할 만큼 흔한 질병이다.(노인 수술률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훅 슬픔ㅠㅠ) 보통의 50대는 잘 수술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나처럼 선천적 눈 나쁨에 백내장, 녹내장 초기, 갑상선 질환에 의한 그레이브스 병, 거기에 노안까지 더해져(가지가지 한다 진짜) 심각한 상황이 되면 급행으로 수술해 주기도 한다. 눈의 흰자나 검은자에 작은 구멍을 내 기존의 혼탁한 수정체를 들어내고 거기에 본인의 시력에 맞춰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너무도 흔하고 간단한 수술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아무튼 내 눈이기에, 전신마취 한다기에, 합병증과 실명 위험도 분명 있는 수술이기에, 걱정과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이었다. 그래서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리뷰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 대형 안과 병원 두 곳을 꼼꼼히 비교했다. 최종 결정한 곳이 Meadows Eye Physicians&Surgeons이었다. 

진심 실화임?? 이렇게 젊고 잘생긴 의사가 안과 수술 전문의라고??? Dr. Saboori. 사실 라스베가스에서 만난 10명 이상의 안과 검안의를 비롯해 수술 전문의까지 대부분 너무 잘생겨서 솔직히 좀 놀랐음. 안과는 인물 보고 의사 뽑나 할 정도로, 백내장 칼럼에 굳이 의사 외모 칭찬까지 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을 보니 그 와이프는 참 좋겠다 라는 유치한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그 와중에 다 물어봤음. 반 정도는 의사 와이프, 반 정도는 하우스 와이프) 우리 엄마가 나 의사한테 시집 보내려고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갑자기 쓴웃음이 킬킬킬 터져나왔다.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예약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1월 초에 전화를 했으니 의사 얼굴 보는 스케줄을 잡기위해 5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6월12일에 의사를 처음 만나 몇 개월에 거친 검사 끝에 첫 수술을 10월 17일에 했으니 4개월이 좀 넘어 걸렸다. 사실 처음 간 병원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도 그 곳이 더 유명한 곳임에도 불구하고(의사도 더 잘생겼음, 진심 배우인줄) 내일 당장 의사 진료 가능, 내일 당장 검사 가능, 내일 당장 수술 가능, 한국식 빨리빨리 스타일로 돈만 내면 일사천리 스케줄을 잡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왠지 그게 더 불안했다. 

생각지 못한 인공 수정체 가격=======

병원이 정해지니 갖가지 검사와 서류작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공 수정체의 선택, 그리고 망할 놈의 수술비를 지불 할 일만 남았다. 난 사실 보험 커버가 되는 줄 알았다. 호텔 딜러라는 직업이 인컴이나 직업 만족도 면에선 최하위지만 그나마 의료보험 혜택이 좋아 꾸역꾸역 붙어있는 건데 아이쿠, 나는 수술 일주일 전까지 $6,200(한 쪽에 $3,100 each)을 완납해야 했다. 여기서 의문, 백내장은 노인성 질환이니 보험 커버가 되지 않을까? 결론은 된다. 나 아는 언니, 많은 분들이 보험으로 $100 미만의 본인 부담금만 내고 다들 수술했다. 그런데 인공 수정체는 보험 커버가 안된다는 말씀. 즉 안경의 도수가 사람마다 다 다르듯, 눈이 나쁘면 나쁠 수록, 비싼 인공 수정체를 쓸 수록 가격은 더 올라간다는 말이다. 평생에 한 번 하는 수술인데, 죽을 때까지 써야 하는 내 눈인데 어찌 싸구려를 하겠는가 흑흑.

Dr. Saboori가 나에게 권한 인공 수정체는 토릭 렌즈였다. 한 가지 좀 의아하고 다른 병원과 달랐던 점이 바로 위에 첨부한 사진의 하이라이트 부분, 즉 레이저를 하면 각각 $3,100×2=$6,200 안 하면 $2,200×2=$4,400 이라는 점이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양쪽 눈에 총 $1,800 꽤 큰 금액차이가 났다. 한마디로 레이저는 눈동자를 절개할 때 레이저 기계로 하는 것이고 레이저가 아닌 것은 의사가 직접 손으로? 칼로? 절개하는 차이였다. 무슨 차이가 있느냐 물었다. Dr. Saboori는 수 천 건의 백내장 수술을 이미 집도한 전문의기에 큰 차이는 없단다??? 아니, 이보세요, $2,000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별 차이가 없다니요??? 굳이 찾자면 회복이 좀 빠르단다. 수술도 훨씬 간단하겠지, 시간도 단축되고 말이야. 그래서 그냥 레이저로 하기로 했다. 비싸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였다. 흠냐흠냐   

수술 스케줄을 잡고, 호텔에 PTO(유급휴가) 신청을 하고, 라이드 해 줄 친구를 섭외하고, 당분간 금주라기에 미리미리 술도 진탕 마셔놓고 드디어 D-Day가 왔다. Las Vegas Surgery Center에 도착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백내장 수술하다 죽었다는 놈 못 봤으니 안심하자구! 라고 옆 친구에게 호기롭게 말한 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숨기려 억지로 씨익 웃어보였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라이드 해줄 친구의 인적사항부터 묻는다. 미국은 참 이런 거 섬세해. 우버 안됨.(친구라고 우기면 될지도?) 무슨 알러지는 있는지, 과거에 앓았던 병은 없는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다양한 질문들에 답을 한 후 2,3 시간 기다려야 하는 친구를 뒤로 하고 수술실로 향했다.

우주선 실내처럼 생긴 수술실=======

대기실? 준비실? 같은 곳에 들어가니 많은 수의 의료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친절하고 상냥한 메디컬 어시스턴트가 가운과 신발 위에 신는 얇은 덧신을 주고 안약을 넣기 시작했다. 총 14가지로 기억한다. 뭐냐고 묻자 안구 부분 마취약하고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 중앙에는 검은색, 그 주위는 갈색인데 검은 눈동자를 갈색 크기만큼 크게 만들어 절개하기 쉽게 하는 안약이란다. 신기하기도 하지. 수술실 입성 전 다시 간이 침대로 옮긴다. 대형 전자렌지에 데운 담요를 건네 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다시 안약, 안약, 안약, 그리고 한 시간이 좀 지났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간호사의 손이 이끌려 수술실로 입성했다. 

오른쪽 눈을 먼저 하기로 했다. 무슨 우주선에 탑승한 줄 알았다. 처음 누운 곳이 레이저 기계였다. 머리를 무슨 띠 같은 걸로 딱 고정하는데 그제서야 좀 무서웠음. 아무리 하찮은 수술이라고 해도 피붙이 하나 없는 미국 땅에서 행여 실명이라도 하게 되면 나 어떻게 먹고 살지?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지? 내 강아지는 누가 돌보지? 문득 눈물이 울컥 났다. 하지만 하도 많은 안약의 주입 덕에 흐르는게 눈물인지 뭔지 그 누구도 알아챌 수 없었다. 다만 눈이 충혈되면 혹시 수술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티나야 울지 마요 스스로 되내이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개구기?? 치과에서 입 벌릴 때 쓰는 기구처럼 눈을 깜박이지 못하게 고정하는 장치가 채워졌다. 왼쪽 눈은 천으로 가려 보이지 않았고 붉은 불빛이 눈 앞에서 깜빡이기 시작했다. 약간 아프다는? 아니 욱신거린다는 정도의 통증?? 30초 가량이 지나 레이저 절개가 끝나고 일어나 다시 간호사 손에 이끌려 바로 옆방, 메인 수술실로 이동했다.

그 곳에는 마취과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팔과 다리 부분을 침대에 고정하고 다시 이마를 타이트하게 묶은 후 전신마취 약이 들어 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음. 깨어 났을 땐 회복실에 누워 있었고 친구가 옆에 있었다. 바로 정신이 들었고 눈에 투명 안대를 한 채 그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을 나왔다. 시간이 얼마정도 지났냐 묻자 들어가고 2시간 반 정도 지났단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졌다. 집에 돌아와 친구가 끓여준 치킨 누들 스프를 조금 먹고 하루 종일 잤다. 핑계 김에 정말 오랫만에 취하는 달콤한 휴식이었다.

안경 도수처럼 시력을 선택할 수 있는 백내장 수술=======

10월 17일 화요일 오른쪽 눈 수술, 2주 후 10월 31일 화요일 왼쪽 눈 수술. 단 오른쪽 눈에 삽입된 인공 수정체가 ㅣ 이렇게 일자로 서 있어야 하는데 / 요렇게 옆으로 누워 있어 왼쪽 할 때 같이 재 수술 했음 ㅠㅠ 한동안 두 눈 다 안 보임. 아무튼 내가 여기서 가장 궁금했던 건 오른쪽 수술을 하고 2주간 과연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였다. 중간에 일도 다시 나가야 했기에 과연 제대로 보이기나 할까가 가장 큰 의구심이었다. 왜냐하면 왼쪽과 오른쪽의 시력 차이가 너무 커 평생을 오른쪽 눈 시력을 낮춰 그나마 잘 보이는 왼쪽 눈에 맞춰 살았기에, 그래서 코 앞에 있는 사람 명찰도 안 보여 이름 외우기가 그리도 힘들었기에(특히 이디오피아 애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에 외모도 비슷비슷함) 한쪽 눈만 수술하고 2주 간의 상태가 정말로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의사, 간호사, 테크니션, 심지어 검안의한테까지 다 물어봐도 대답은 보일껄???? 이었다. 보통은 일시적으로 안경의 한쪽 알만 빼거나 한쪽 렌즈만 착용하고 산다는 것이었다. 근데 그거는 말 그대로 보통의 경우지, 나처럼 20/250 되던 시력을, 평생을 왼쪽 눈에 맞춰 20/150 정도만 보고 살던 걸 수술로 원상복구 시켜놓으면 기존의 왼쪽 눈이랑 발란스가 맞음????? 결론은 평소 끼던 렌즈 끼니까 얼추 맞음. 왜냐하면 수술 전 의사가 하나만 고르라고 했음. 너 가까운데 보고 운전할 때 안경낄래? 아님 먼데 보고 가까운데 볼때 돋보기 낄래? 눈이 나빠 렌즈 위에 안경을 꼭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용 상의 이유로 절대 안쓰던 내가 돋보기라굽쇼?? 아이고 싫어요. 운전할 때 쓰는 안경을 택했다. 한마디로 완벽한 시력교정은 불가능하단 말이다. 내 눈은 백내장 수술 후에도 항상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해야 하는 저주받은 시력이라는 걸 절감해야 했다. 이 정도도 물론 감지덕지하지만 요 앞에 있는 TV를 볼 때나 운전할 때 Street 사인 등이 잘 보이지 않아 지 눈 나쁜 건 그새 잊어버린 채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어메이징한 백내장 수술=======

다만 의술의 발달로 정말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네 하는게 진심이다. 매일 아침 눈 떴을 때 주위가 온통 선명하게, 밝게보인다는 사실이 남한테는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기적같은 일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껴도 운전조차 힘들던 불편함이 사라졌다. 매일 렌즈를 끼고 빼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술 마시고 뻗어 혹시라도 렌즈를 끼고 잔 날에 몰려오는 눈의 통증, 가렵고 따갑고 항상 이물감이 있어 심하게 불편하던 렌즈를 더이상 끼지 않아도 (먼 곳 빼고)웬만한 건 다 보인다는 희열과 행복감, 어메이징한 결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하늘이 정말 새하얀 흰색에 푸른 색이 더해졌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금까지는 세상이 노란 셀로판지를 겹쳐 놓은 듯한 색인 줄만 알았다. 엔틱 인테리어에 많이 사용되는 은은한 조명인 백열등 세상에서 살다가 수술실 안의 분위기처럼 온통 밝고 하얀색인 형광등 세상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백내장 수술 후 제일 처음 한 일이 화장실 청소를 이틀 내내 했다. 정말이지 못봤다, 그렇게 먼지가 많은지. 내 피부가 좋지 않은 건 사춘기 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모양 이 꼴인 줄은 차마 몰랐다. 내 바지 색이 곤색(네이비)이었다니, 검은색으로 얼마나 오래 알고 살았는데..킥킥 혼자 한참을 웃었다. 콩깍지도 벗겨졌다. 내가 그리도 사랑했던 사람이 저렇게 주름 투성이에 못난이였다니, 어이쿠 깜짝이야, 놀라고 또 놀랐다. 절대로 결단코 이해하지 못했던 미시 뷰티방의 수많은 시술, 수술 질문이 무조건 100%, 200%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2주 사이에 전신마취를 2번 해서(정확히는 잠깐 기억이 안나게 하는 수면마취) 그렇지 정말 간단하고 쉬운 수술임에 비해 효과는 심봉사가 눈을 뜬 그 이상이었다. 특히 나처럼 평생을 오랜 세월 거지같은 시력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면 정말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있다.(아까도 언급한 먼 데가 잘 안 보인다는 실망감은 내 눈 꼬라지를 알면서도 객기 한 번 부려 본 것임) 후유증 전혀 없고 솔직히 수술 다음날부터 가까운 거리는 선글라스 끼고 운전도 했다. 일주일 뒤 부터는 술도 다시 진탕 마셨고 세수도 눈만 빼고 뺨과 목, 이마를 중심으로 다음날 부터, 샤워도 목 밑으로 바로, 머리는 이틀 뒤 안대 안에 두꺼운 휴지 대고 할 짓 다 했다. 험한 일 하지 말고, 무거운 거 들지 말고, 격한 운동 하지 말고, 요런 말은 잘 들음.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몸뚱이는 하나하나 고장나기 시작하는데 마음은 다시 젊어지고 에너지는 꺼질 줄 모른다. 그 흔한 갱년기 증상도 우울증 따위도 없다보니 갑상선이나 백내장같은 다른 늙어감의 신체 변화도 차라리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어딜가도 중년여성, mama,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고 살지만 나는 아직 예쁘다. 그렇게 주문을 외우며 산다. 젊은 마인드도 장착하려 애쓰고 있으며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이제는 남자의 주름도 확실히 볼 수 있는 시력을 되찾았으니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 겁 먹지 말고 꼭 하시라, 백내장 수술! 단 거울 속에 비친 자기 피부에 쇼크먹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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