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라스베가스 한인마트인 왕마트(W Mart)에 새로운 남자 사장님이 참 친절하다는 글을 이 곳 사이트에서 몇번 읽은 적이 있다. 마트 사장님이 친절하다고? 흠.. 우리가 누구인가? 열심히 사는 분들에게 돈쭐 내주는 걸 행복해 하는 민족이 아니던가? 지체없이 왕마트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면 멀다. 지 아무리 라스베가스는 어디든 30분 이내에 간다고들 하지만 한인타운에 사는 나로서는 그린랜드보다, 웬만한 한식 재료 다 있는 중국 마트보다 엔간히 먼 건 사실이다. 거리상으로 멀다기 보다는 하이웨이 타고 내려가다 보면 사하라 호텔 앞 사거리가 공사로 인해 항상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다. 

이런 곳에 떡하니 한인 마트를 차려 놓은 회사의 배짱은 또 뭔가 의아해 했더니 바로 식당이나 회사 등에 도매로 납품하는 식자재 홀세일 마트였던 것이다. 어쩐지 이 마트는 어떻게 먹고 살까 걱정부터 앞 선 내가 얼마나 바보같던지 에휴, 그 놈의 오지랖… 아무튼 우리가 흔히 접하는 친숙한 ‘왕’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제법 큰 규모의 식품회사 계열 마트라는 결론이다.

세일할 때 빼고 평소에는 왕마트를 잘 이용하지 않지만 친절한 남자분 추천에 솔깃해 일부러 방문한 왕마트! 소소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길이 모여 마트가 잘 되길 바라는 작은 마음! 새로운 남자 사장님 역시 마트의 오너가 아니라 새로 부임한 매니저라는 사실!! 오너이든 매니저이든 이 분 친절한 거 잠시 후에 자세히 얘기해 보도록 하자.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혹은 세 달에 한 번, 아무튼 혼자 사는 덕분에 자잔한 음식 재료는 근처 마트에서 사지만 어쩌다 한 번씩은 쟁여 놓을 음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보통은 쌀, 라면, 김치, 냉동식품이나 간식류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베가스는 여름에 항상 덥지만ㅠㅠ) 냉면과 김치 구입이 주 목적이었다.

하지만 오랫만에 방문한 마트에서 꼭 필요한 물건만 살 수는 없는 게 진리 아니던가. 이것 저것 담다보니 이번에도 역시 큰 손임을 인증하는 쇼핑이었다. 여기서 가장 자신있게 추천하는 품목이 바로 김치이다. 왕마트에서 판매하는 빨간 박스에 담긴 수라상 브랜드의 전라도식 포기김치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김치 중 하나이다. 

사실 우리가 직접 담궈 먹지 않는 이상 김치는 우리들에게 가장 큰 숙제이자 오랜 염원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입맛이 제각각인 관계로 내 입에 딱 맞는 김치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옛날 엄마가 해주신  김치의 비스무리한 맛이라도 찾으면 그건 행운인 셈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왕마트 김치를 베스트로 꼽는다.

자 이제 오늘 이 칼럼을 쓰게 된 계기를 솔직히 말해 보자. 나는 오징어 젓갈을 좋아한다. 입맛 없을 때 참기름과 통깨를 솔솔 뿌린 짭짤한 오징어 젓갈만 있으면 밥 한공기 뚝딱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원래도 비쌌는데 미국이라 그런지 팬데믹 이후라 그런지 가격이 만만치 않아 장보러 갔다 몇번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던 기억이 있다.

한인 마트의 반찬 코너에 가보면 대부분 반찬이 동그랗거나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는데 용량이 보통은 4온즈나 많아야 8온즈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한 왕마트 오징어 젓갈은 말 그대로 사이즈가 대용량인 16온즈, 즉 1파운드가 넘는 무게였다. 작은 사이즈로 항상 두, 세개씩 담곤 했는데 여긴 하나로 충분한 용량이라 좋았다.      

더 착한 건 가격이었다. 16온즈 큰 사이즈 무 말랭이, 깻잎 같은 반찬은 4,5불 대, 오징어 젓갈은 7불이었다. 일반적으로 얇고 작은 컨테이나 하나에 3,4불 정도 하니까 3배가 넘는 용량에 2배가 채 안되는 착한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아껴먹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혼자 실실 웃음도 났다. 베가스 마트에서 이렇게 큰 사이즈의 오징어 젓갈을 파는 것은 첨 봤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마트 내부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냉장칸 김치였다. 처음엔 배추김치를 사러 갔는데 떡하니 한국산 동강 총각김치가 내 눈에 띄었다. 김치 중에 가장 맛 내기 어렵다는 총각김치를 보자 반가움에 손이 먼저 갔다. 동강이라는 지역 이름도, 특히 한국산이라는 장점이 후덜덜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낌없이 카트에 담게 했다. (깜빡하고 사진 못 찍음)

이것 저것 장을 보고 계산대에 서니 많은 분들이 추천한 남자 사장님 아니 매니저 분이 캐쉬어 분 옆에서 비닐봉투에 물건 담는 걸 도와주고 계셨다. 순간 계산대 레일 위에 놓인 내 총각김치를 보자마자 잽싸게 따로 빼시더니 이건 너무 시어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신 걸 좋아하시면 찌개나 김치 요리에 사용할 순 있어도 그냥 드시기엔 너무 십니다. 사지 마세요. 

내 바로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분 역시 같은 김치가 카트에 있었는데 그 분 것 역시 빼서 회수해 가는 모습을 보고 깊은 신뢰감이 생겼다. 보통의 마트에 가면 매니저가 누군지 얼굴은 커녕 코빼기도 보기 어려운데 이 분은 마치 공항 검색대에서 승객의 물건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검사하는 안전요원처럼 전체를 스캔하며 뭐 도와드릴 게 없나 확인하는 중이었다.

또한 오징어 맛 과자를 하나 들더니 이건 하나에 1불 50센트인데 두 개를 사면 2불로 세일하는 품목입니다. 하나보다는 두 개를 사시면 더 이익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하나를 더 집어왔다. 고도의 상술이든 철저한 서비스 전략이든 성질 급해 기다리지 못하는 한국사람의 시간을 뺏지 않으면서도 디테일하게 이런저런 정보를 주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묵직해진 쇼핑 봉투에 콧노래가 절로 났다. 집에 와서 펼쳐보니 더 가관이다. 두 장의 사진에 빽빽한 저 물건들의 영수증에 275불이 찍혀있다.사골 육수 한 박스에 비록 작은 사이즈이지만 컵라면 두 박스, 김치에 오징어 젓갈은 물론 볶음용 멸치, 고추가루 두 팩, 냉동 삼겹살, 굴, 해산물, 과자류, 냉면에 만두, 김, 심지어 비싸서 잘 못 사먹는 맥주 안주 마른 오징어까지 꽤 저렴한 가격에 장을 봤다. 300불은 거뜬히 넘을 거라 예상했는데 내가 틀렸다.

왕마트 관계자님, 이 매니저 분 칭찬합니다. 한국 손님의 진상이라든지 마트의 독과점 식 횡포라든지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마트 갔다 행운처럼 우연히 만난 매니저님도 아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상주해서 장 보는 소비자 하나하나의 필요한 부분을 해결해 주는 이런 분 미국 와서 처음 봤습니다. 기본적인 서비스 마인드가 일반인과는 다른 분이세요. 왕마트의 다른 직원들 역시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런 매니저님과 같은 마음이라면 곧 생기는 유통 공룡 H마트와 한 판 붙어 맞장 떠도 이길 확률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이 마트 매니저로 있는 왕마트는 참 행운입니다. 부디 그 행운을 적게나마 우리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시길 조심스레 바래봅니다.   



칼럼니스트 티나 김
tina@myfunlasvegas.com
www.myfunlasveg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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