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세대를 시작으로 자판을 칠 때마다 타닥타닥 소리도 경쾌하던 타자기를 거쳐 386 컴퓨터에 하드 드라이브까지 섭렵한 내가 남과 여에 대해 칼럼을 쓴 지도 어언 40년 가까이 되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아직까지 화려한 싱글,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외롭고 추레한 싱글의 삶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긴 해도 남과 여에 관한 글을 쓴다는 건 언제나 흥분되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카지노 딜러라는 웃기는 짬뽕같은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3년 가까이 되고 보니 전에 모르던 또 다른 남녀의 일상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내가 직접 보고 느낀 것 아니면 결단코 믿지 않는 성격 탓에 새삼 세상에는 참 희한한 사람들이 많구나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라스베가스 한복판에서 경험한 딜러의 시각에서 혹은 한국 아줌마인 제 3자의 눈으로 바라 본 미국 남과 여의 특이한 경험담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의외로 참을성 많은 미국 여자 애들=====

라스베가스라는 도시 특성 상 서비스 업이 주를 이루는 직업군이 많아 당연히 미국에서 나고 자란 백인들 무리보다는 수 많은 타국에서 이민 온 각양각색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는 도시! 그래서일까, 유난히 라스베가스에는 동양인 여자와 백인 남자 커플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리 신세대인 척 꼰대 아닌 척 유난을 떨어봐도 나이에서 오는 유교사상을 완전히 떨쳐버리긴 힘들다는 걸 절감하고 있는 요즘, 참을성 많은 동양 여자&이기적이라고 소문난 백인 남자 커플도 아닌 오리지날 백인 남녀 커플을 보며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남자가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하는 동안 백인 여자 애들은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한다. 그것도 몇 시간씩이나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같이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만 오롯이 게임에 집중한다. 구경하는 사람은 함께 의자에 앉을 수 없기 때문에 여자는 당연히 뒤에 서 있는다. 게임을 보는 것도 아니요, 돈을 얼마 땄는지 잃었는지 관심도 없다. 마냥저냥 기다린다, 보통 서너 시간씩 말이다. 블랙잭 테이블도 그렇고 주사위를 던지는 다이스 테이블도 마찬가지다. 남자 애들이 돈을 잃으며 욕지거리를 내뱉거나 돈을 따서 환호성을 내지를 때도 여자는 뒤에 서 있다. 많은 젊은 여자 애들이 그런다.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 지루한가? 다리 안 아픈가?? 분명히 같이 여행 왔을텐데 어쩜 저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몇 시간씩 내리 투명 인간처럼 구경만 하고 서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나는 못해, 아니 안해. 얼마나 사랑하는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바람피워 낳은 애도 기꺼이 거둬주는 미국 남자 애들=====

보통의 상식이라면 게임 좀 하다 일어서는 게 대부분인데 의외로 나랑 같이 출근해 나랑 같이 퇴근하는 애들도 많다. 8시간 이상을 한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하는 애들이 꽤 된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사생활 얘기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나름 깨어있는 마인드라는 나 조차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 더러 있더라는 말이다. 이건 꼭 라스베가스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리라. 간단하게 말해 남자랑 여자랑 사귀다가, 여자가 바람이 나서 딴 놈 아이를 임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여친이 임신했다는 사실이 바람을 피웠다는 팩트보다 더 강하게 와 닿는 모양이다, 얘네들은! 여자의 부모들도 바람을 피워 임신까지 한 막장 드라마보다는 임신 사실을 더 축복하고 격려해 준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만 여러 건에 달하니 참으로 세상 말세가 아닐 수 없다. 남자 입장에선 자기랑 피 한방울도 안 섞인 내 여친이 바람 피워 낳은 아이를 호적에 올려 잘 키우는 케이스도 여럿 봤다. 제 아무리 개방된 성 문화에 인명을 중시하는 문화가 깊히 뿌리 박혀 있다고 할 지언정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다. 내 입장에선 말이다. 얼마 전 한국을 시끄럽게 달궜던 이슈가 와이프가 분만 도중 사망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상간남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라 과연 내 호적에 올리는게 합당한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사건이 있다. 그런데 결혼과 이혼이 한국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미국 땅에서 이미 가진 아이에 대한 애착은 그 상상을 초월했다. 세상은 넓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은 오늘도 내 옆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부모님 돌보느라 결혼을 포기하는 미국 애들=====

내가 속으로 쬐금 짝사랑한 우리 호텔의 보스가 있다. 나보다 몇 살은 어리지 싶은 키가 큰 호텔 매니저인데, (얘네들은 나이 절대 말 안해 줌. 대충 상상할 뿐, 알 방법이 없음) 멀쩡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이미지인 총각이 결혼을 한번도 안 했다는 게 의아했다. 원인을 알고 보니 아버지가 오랜동안 몹쓸 암에 걸려 투병 중인데 둘이 살며 그 아버지를 돌보느라 결혼할 기회를 여러번 놓쳤다고 한다.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를 매일 산책시키다 공원에서 만난 젊은 총각이 있다. 너무 귀엽고 못생긴 불독을 데리고 다니는 사지 멀쩡한 총각인데, 왜 싱글이냐고 묻자 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결혼을 못했단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병 걸린 시엄마와 한 집에 살겠느냐며, 자기가 아니면 누구도 엄마를 돌 볼 사람이 없어 결혼을 포기했단다.

지붕에 부착해 전기 대신 사용하는 태양열 에너지 판넬 세일즈를 하는 친구 하나는 엄마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케이스이다. 전국 각지에 있는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 다니며 어머니의 불치병을 고치느라 일도 제대로 못하고 가지고 있던 재산도 탕진한 채 돈벌이도 할 수 없어 결국엔 미국에서 돈 보다 중요하다는 크레딧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결국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나이 50 넘어 밑바닥 인생부터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결혼은 죽어도 안 하겠다는 남녀 커플=====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남자 친구가 어쩌고 여자 친구가 어쩌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애들은 또 몇 명이며.. 하는 식의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꼭 재벌의 이야기 뿐 아니라 미국 애들은 서로 사랑해 죽고 못 살면서, 수 십년 씩 애 낳고 알콩달콩 같이 살면서 결혼은 안 하는 경우가 꽤 많다. 난 정말 그게 이해가 안된다. 나 늙었나봐… 나 정말 꼰대인가 보다 흑흑… 혹자는 말한다. 결혼은 왜 해? 연애만 하고 살아. 이 나이에 밥 해주고 남자 치닥거리 해주고 섹스해 줄 일 있어? 혼자 사는 게 얼마나 편한데? 그냥 편하게 연애만 해!! 라고 말이다. 그런 사람 끼리끼리 만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하나가 세상을 다 가진 건 아니지만 신뢰와 사랑이 바탕이 된 평생의 약속이다 보니 가벼운 연애보다는 서로에게 그만큼의 책임감과 의무가 부여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적극 찬성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반대로 물어보자. 섹스 파트너만 해, 엔조이만 해, 수틀리면 바로 빠이빠이하면 깨끗하잖아. 돈 나눌 일이 있나, 의심하고 싸울 필요가 있나, 그냥 연애만 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고 사는 억울한 일을 왜 해? 속 편하게 혼자 살아!! ……………. 물론 좀 극단적으로 예를 들긴 했지만, 많은 미국 애들이 그렇게 동거만 하고 결혼은 안 하고 산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나이 많은 한국 아줌마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는 요즘의 추세라면 할 말은 없다. 그저 나는 아무 조건 없이 평생 사랑할 한 사람만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라스베가스에서 바라 본 요즘 애들의 살아가는 방법은 나 때의 그것들과 꽤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때로는 흠칫흠칫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감탄하는 순간도 있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도 우리를 보며 그토록 안타까워 했을거라 생각하니 그저 쓴웃음만 난다. 평생 해결할 수 없는 숙제만 잔뜩 떠안은 남자와 여자라는 운명은 어떤 특정한 결론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며 견뎌내야 하는 사이일지 모른다. 나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인종은 달라도 단 하나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바로,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사랑 따위 하나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치열한 인생의 전쟁터에서 더 처절하게 버뎌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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