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왔어. 내 인생에 2023년이라는 새해가 오리라곤 생각지 않았어. 마냥 젊다고 까불었었지. 2002년 월드컵이 어제같고 2010년 미국에 홀로 똑 떨어졌을 때만 해도 2023년에 대한 미래는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았지. 그런데 어느새 나는 50이 훌쩍 넘어버렸고, 2023이라는 무서운 숫자는 달력에 내 심장에 푹하니 문신처럼 박혀 버렸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건강

몸이 아파온다=====

용수철처럼 펄펄 날아 다니던 20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잘생겼던 예전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왜 오징어 안 먹어?” “나도 너무 좋아하는데 못 먹어. 이가 아파서.” 잉??? 20대에 허우대 멀쩡한 근육질의 너가 이가 아파서 오징어를 못 씹는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빨리 좀 걸어 엄마, 늦었잖아!!” 시퍼렇게 짜증 내던 내 뒤로 엄마는 나를 놓치지 않으려 기를 쓰며 말한다. “다리가 아파서 너처럼 빨리 못 걸어.” 기어 들어가던 엄마의 목소리는 아직도 환청으로 남아 내 귓가를 맴돈다. 저 멀리 하늘 나라에선 더이상 다리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천성적으로 허약한 체질이 분명 있겠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우람했다. 한약은 고사하고 그 흔하다는 비타민 C 영양제 조차 먹어본 적 없지만 감기 한번, 잔병 치레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갑상선 항진증을 필두로 시도 때도 없는 두통, 자부심이었던 치아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으며 더부룩한 속, 예전 같지 않은 소화능력, 심장병이 의심스러운 가슴 두근거림, 별 지랄을 다해도 빠지지 않는 살,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어구구구를 연발하게 되는 허리 통증, 그리고 더 이상 엄마에게 잔소리 할 만큼 빨리 걷지 못하게 되었다. 암이라는 단어가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고 수십 종의 영양제를 달고 살며 몸이 늙어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 순간, 그 동안의 자만을 질책이라도 하듯 두려움이 한 순간에 몰려왔다. 

마음은 더 아파온다=====

몸 아픈데 덮쳐 마음까지 병이 온다면 이보다 더 서러운 일이 있을까? 수십 억 건물주에서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여인숙을 전전할 때도 나는 허허 웃으며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놓지 않았다. 수 천만 원 돈을 잃어도 더 잘되겠지 하며 툴툴 털어버리는 성격이었다. 남자의 배신도, 절친했던 친구의 뒷통수도 오죽하면 그럴까, 지도 살려고 그러겠지 스스로 위로하며 눈물 한번 슥 훔치고는 끝이었다. 그런데 정확한 원인도 명료한 발병 시기도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이 생기기 시작하자 몸의 질병과는 또 다른 서러움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울증인가, 화병? 불면증? 트라우마? 이도 저도 아니라면 공황장애인가? 단지 갱년기 증상으로만 치부하기엔 나 너무 쓸데없이 마음이 너무 아픈데??

미국에 산다. 강남의 부유층조차 애들 유학 못 보내 안달인 미국 한 복판에 나는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백인, 흑인, 아시아인까지 한데 섞어 하하호호 웃으며 일하는 와중에 분명히 느낀다. 내 정신과 자아는 세상과 떨어져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에 지쳐 심장까지 파고드는 고통에 눈물 뚝뚝 흘리며 혼자 서서히 스러져 가고 있음을 말이다.

그건 분명 가족이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 감정일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자식을 키웠나부터 남의 편인건 진작에 알았지만 모두가 들떠있는 연말연시에 지 할일만 처 하고 있는 남편을 보면 울화통이 치밀다 못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의 회의감에서부터 아무도 모르게 고통없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마음도 굴뚝같다. 그러다가 문득 내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가 눈에 밟힌다. 살겠다고 꾸역꾸역 입에 밥을 넣고 있는 남편을 보면 짧은 한숨과 함께 측은함도 앞서 독한 맘을 슬그머니 접어 넣곤 한다. 

사랑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기는 할까?=====

TV속 화면에 비춰지는 몇몇 연예인 커플을 보면 결혼한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굳이 연예인까지 안 가더라도 얼마나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이(순전히 내 기준으로) 멀쩡한 남자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주위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나는 왜? 나는 뭐가 모자라서?? 누가 돈을 달래? 명품 백을 사달래? 아무 것도 안 하고 사랑만 달래? 나는 여자고 너는 남자니까 뭐든지 져 달래기를 해? 아니면 돈 못벌어 온다고 구박을 해?? 아니야. 공주처럼 대해주는 건 바라지도 않아! 꿈도 안 꿔!! 다만 내 편이 되어 달라는 거야. 내가 하지 말라는 짓 좀 하지 말고 딱 내가 원하는 그만큼만 해달라는 거야. 그게 힘들어? 수 억을 벌어 달래? 최수종처럼 해달래?? 아니잖아.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어???

힘들다, 사랑. 그 단어조차 너무너무 힘들다. 먹고 살기 힘들어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연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사랑의 유효기간은 존재하는 것인가? 영원한 사랑이란 진정 없는 것인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에 유효기간은 없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맬 순 있다. 다만 사랑의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측은함이든 애틋함이든 그리움이든 짝사랑이든 간에 사랑은 영원하다. 그것은 모성애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 이유없이 조건없이 평생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 당연히 중간에 싸우겠지.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죽고 싶다는 생각을 골백번도 더하겠지. 하지만 그것이 변질되던 승화되던 지랄을 하던, 사랑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꼴보기 싫어진다고? 그것도 일종의 사랑이다. 사랑이 없다면 정말 아무 감정 없어지니까. 지나가던 홈리스를 쳐다 보는 느낌이 든다. 순간 앗? 누구지? 저 사람 왜 나랑 여기 있지? 그럼 그 사랑은 끝난 거다. 당장 다른 영원한 사랑을 찾아 떠나길 강력 추천한다. 다만 여기 마지막에 ‘병~~~신’ 이라는 단어 하나가 붙는다면 아직 사랑의 가능성은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부정도 사랑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사랑에 목마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는데.. 그저 다정한 눈길과 행동으로 나를 사랑한다 말해주면 충분한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모두 공감한다. 어렸을 땐 철부지여서 그랬다 치고, 나이 들어서는 마지막 동반자라 참는다 치고, 어중간한 나이인 나는 왜 아직도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코미디 프로 보며 같이 낄낄대고, 드라마 보며 같이 훌쩍이고, 더울 때 선풍기를 서로 양보하고 추울 땐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꼭 잡아주는 그런 사랑이 왜 이 다지도 힘든 것인가 말이다.  

왜 그렇게 인생 힘들게 살아? 지 팔자 지가 꼰다고 왜 사랑에 목매고 살아, 패배자처럼? 혼자 못 살아? 뭐가 두려워?? 사랑이고 나발이고 나는 혼자만의 인생을 즐기며 내가 쓰고 싶을 때 돈 쓰고 연애하고 싶을 때 멋진 놈 골라가며 연애만 하고 내 자신의 커리어만을 위해 살거야!! 라는 사람 분명히 있다. 존경합니다. 그렇게 하세요. 멋지게 사세요. 저는 그렇게 못하는 머저리니까 말이에요 흑흑.

가족

가족이 옆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

No Comment 하겠다.

오롯이 혼자라면 과연 더 행복할까?=====

No comment 하고 싶다.

열정

정신은 그대로인데 몸만 늙어버렸다=====

야속한게 세월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콧방귀를 풍풍 뀌곤 했었지.일명 늙은이들의 자기 위로 같은 넋두리라 혀를 끌끌 차기만 했었어. 누구는 안 늙나? 세월이 뭐? 쌩으로 경험 없이 가진 것 없이 나사 하나 빠진 애처럼 시행착오만 거듭하는 초짜일 지언정 나이 든게 벼슬은 아니잖아?? 오만에 싸가지를 더해 자만으로 가득차 있던 젊은 시절이 갔다. 직접 나이 들어 보니 참 야속하게도 그 당시 어른들이 했던 말이 그대로 맞다는 걸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오마이갓, 거울 속 나는 아줌마를 넘어 할머니로 향해 가고 있는데 내 맘 속에는 아직도 철부지 그대로의 감정이 울끈불끈 살아 있으니 적잖이 혼란스럽고 더 많이 당황하게 된다. 

30대 젊은 직장 동료의 찰랑이는 머릿결이 부러워 나도 길렀다. 웬걸? 부시시하고 쥐 파먹은 듯한 초라한 긴 생머리만 남았다. 나는 내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내 눈에 보이는 딱 저 만큼의 아름다움만 상상하고 따라했다가 큰 상처만 남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의 중년 여성들처럼 숏커트에 파마를 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나는 그렇게 획일화된 삶이 싫어 이 머나먼 타국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싫어, 똑같이 살진 않을 거야. 곱게 미치면 약도 없다던데,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혼자서 발버둥을 치고 최후의 발악을 해본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 나이 20대, 나이 40 넘은 아줌마가 미니 스커트 입은 모습을 보고 적잖이 충격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나이에 왜? 미니 스커트? 딱 붙는 상의? 으이 징그러워. 나이 값 좀 하지. 거울 좀 보세요, 쪽팔리지도 않나?? 했었다. 나는 40도 50도 안 될 줄 알았다. 

2000년 대 초반,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를 보고 또 많은 충격을 받았었다. 일흔을 넘긴 커플의 성생활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는데, 당시 성 칼럼니스트로서 방귀 꽤나 뀐 개방적인 나로서도 진심 이해가 가질 않았다. 70 넘어서??? 40 넘으면 아무도 안 하고 살지 않나? 그 나이에 성욕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해? 그랬었다. 그 땐 그랬다. 이 얼마나 재수없고 무식하며 이기적인 편견인가 말이다.

많은 여성들이 성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여자가 섹스의 ㅅ자만 얘기해도 화냥년 취급 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의 현실이란 것이다. 여자도 사정을 한다. 고등학생들에게 콘돔을 나눠 줘야 한다. 여자에게 오르가즘을 주지 못하는 놈들은 섹스할 자격이 없다. 남자의 몸에는 제 2, 제 3의 성기가 있다, 제발 혀 좀 놀려라. 등등 이런 내용의 칼럼을 썼다가 경찰 조사까지 받은 적 있다, 진짜다. 

나는 아직도 사랑에 목마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해 정말 찐~~한 섹스가 하고 싶어 죽겠다. 한국 남자친구를 안 만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섹스를 못해서이다. 오르가즘을 한 번도 못 느껴본 여성이 많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하고 화가 나 미칠 지경이다. 왜 우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당연히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밝히는 여자로만 치부해 버리고 끝인건가?? 2023년, 비로서 어른들의 섹스를 터놓고 얘기할 때가 왔다.

미래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라는 말 따위 믿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우기로 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기로 했다. 더 이상 아이고 내가 참고 말지 하며 내 속만 문드러지지 않기로 했다. 나도 살고 싶다. 영화에서 처럼은 아니어도 멋지게 당당하게 눈 뜨면 겁나게 행복에 겨워하며 살고 싶단 말이다. 그것은 혼자도 가능하고 남자친구 혹은 남편과도 당연하며 가족과 함께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느끼는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바로 ‘내 맘대로’더라. 만약 내가 괴롭다고 느끼면 일터에서나 운전할 때나 친구들을 만나도 우울할 뿐이고,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며 발걸음조차 가벼워 지더란 말이다. 물론 싫은데 좋은 척 하라는 말이 아니다. 불행한데 행복한 척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다. 내가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지금 이혼 소송 중인 남편 놈도, 어제 한바탕 전쟁을 치른 자식 놈도, 제 잘난 척만 하는 이기적인 친구 놈도, 회복 불가능한 듯 바닥을 친 주식 시세도 다 내 생각 하나에 일희일비하더라는 말씀이다. 통장 잔고를 보며 더 이상 내쉴 한숨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포기하지 마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뭐라도 시작하자. 더 이상 혼자서 외로워 하지 말자.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소주만 깐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

나는 오늘도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는다. 아직도 섹시하다고 말해주는 남자 친구가 옆에 있어 좋다. 조만간 헤어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에게 최선을 다한다. 나중에 스스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 이기심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나는 오늘도 개털같은 생머리에 드라이를 한다. 긴 머리가 훨씬 어려보인다고 말해주는 미국 친구들이 곁에 있어 행복하다. 한국 같았으면 아마도 아줌마 주제에 보기 흉하다고 경찰이 잡아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ㅠㅠ

기대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라. 물론 말이 쉽지 나 역시 매일 기대하고 또 매일을 실망하며 산다.

거울 속 얼굴은 주름으로 쭈글쭈글 하지만 나는 오늘도 로맨스를 꿈꾼다. 백마 탄 왕자님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먹여 살려도 상관없다. 그냥 남들 다 하는 그저 그런 로맨스면 충분하다. 

포기하지 말고 부정적이지 말라. 이 역시 말이 쉽지 나 역시 툭하면 설마 되겠어? 어떻게 내가..를 거듭하며 살았다. 몸과 마음은 예전같지 않아 기억력도 흐려지고 성질도 많이 죽었지만 앞으로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나는 오늘도 어떤 화려한 내일을 살까에 대한 고민으로 매일이 즐겁다. 돈도 직업도 성취감도 나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나는 아직 내 인생을 정리하고 은퇴하기엔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열정이 채 식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꿈도 많다. 잠은 죽어서 자기로 했다.

나는 아직도 아줌마라는 소리가 듣기 싫다. 40대가 막 됐을 즈음인가? 난생 처음 누군가에게 아!줌!마!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때의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생생하다. 정색하며 똥그래진 내 눈을 보고 그 사람이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부정하고 싶지도 않은 서글픈 내 나이가 찬란하게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이 좋다. 시도 때도 없이 사레가 걸려 쪽팔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나이가 감사하다. 누군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NO를 외칠 것이다. 60이 되어도 좋을 것이고 70이 돼서도 연애를 할 것이다. 다만 나이 먹어가고 있음을 즐길 것이다. 경험자로서 누군가에게 꼬딱지 만큼의 조언을 해주고 스스로 기특해하며 축배를 들 것이다. 쓸데 없는 오지랖으로 귀한 친구를 잃지 않을 것이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기로 했다. 여자 혼자 산다고 색안경 끼던 시대는 갔다. 결혼 몇 번 했다고 이상한 여자 취급하던 시대 역시 갔다. 더 이상의 편견과 사회적 잣대는 정중히 사양한다. 

늙어가고 있다. 나는 나이 먹어 가고 있지만 그만큼 더 큰 자유와 기회도 함께 주어진다. 초라하게 살지 않겠다. 연예인같은 화려함은 없어도 당당함이라는 무기가 있으니 나는 그게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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