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약간의 사설을 먼저 붙이자면 베가스 오기 전 타주 한인 마켓 푸트코트에서 청국장이랑 오징어볶음 장사 좀 하다 왔다. 나 청국장 좀 잘 끓인다는 쓸데없는 부연 설명임. 아무튼 베가스 오고 한 3년 쯤 지났을까? 문득 청국장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졌다. 그동안 못 먹은 거 대충 된장찌개로 대체했으나 긴 말 설명따위 필요없이 청국장과 된장찌개의 어마무시한 차이는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다만 아파트든 혼자 사는 단독 주택이든 감히 집 안에서 끓일 용기가 쉽게 나지 않는게 사실아니던가. 심지어 뒷마당에서 시도하려 해도 옆집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임. 어찌저찌 세월이 지나던 중 아직까지는 베가스에 유일한 한인마트인 그린랜드 옆 서울 뚝배기에서 청국장을 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재빨리 한걸음에 달려갔다.

두부 하나만 보이는 청국장, 언뜻 보기에는 뭐지? 했는데 국물 한 수저 뜨니 그득그득한 건더기가 가득하다. 걱정 마시라. 안에 잔뜩 숨은 청국장 콩과 갖은 채소, 양념들이 한데 섞여 훌륭한 화합의 장을 이룬다. 콤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반갑다. 맛있다. 한국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상상만 해도 절로 침이 고이는, 우리들에게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음식, 청국장. 뭔가 막혔던 체증이 확 풀리는 맛, 나 한국 사람 맞네! 나는 왜 이 식당을 이제야 알았을까? 그렇게 그린랜드를 들락거리면서도 바로 옆에 붙은 서울 뚝배기를 왜 들어갈 생각도 못했을까? 아무튼 지금이라도 찾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원래 생선을 못 먹는다. 하도 떠들고 다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나이 먹고 보니 오메가 3가 너무 중요하다고들 해서 약으로까진 못 먹겠고 일부러 먹을 수 있는 생선 종류로 찾아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절대 무시 못하는 베가스 칼바람이 극성인 밤, TV를 보다가 추운 겨울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동태찌개를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고 다시 서울 뚝배기로 향했다. 커다란 뚝배기에 펄펄 끓는 동태찌개가 나왔다. 드디어 나는 깨달았다. 아, 나 생선 먹을 줄 아는구나!! 사진에 보이는 것만큼의 생선이 국물 밑에 잔뜩 숨어있다, 야홋! 비리지도 않고 솔직히 눈 감고 먹으면 생선인지 모를 정도로 폭신하고 두툼하며 탱탱한 살점이 가득했다. 

나는 해산물 킬러다. 헤엄치는 물고기는 싫어도 일명 갑각류인 해산물은 짱 좋아한다. 미국인 전 남친들이 매번 낄낄 웃으며 이해 못하던 표정이 생각 난다. 아니, 생선 비린내는 못 맡고, 해산물 비린내는 즐긴다고? 내가 생각해도 좀 어처구니가 없긴 하지만 어쩌랴, 타고 나길 그런 걸 말이다. 허름한 한국 포장마차에서 숭덩숭덩 썰어주던 한치회가 먹고 싶어 죽겠다. 편으로 썬 생마늘에 고추, 초장까지 얹어 한 입에 호로록 털어 넣는 생굴이 그리워 더 죽겠다. 내가 만들면 절대 그 맛 안나는 알싸한 초장에 푹 찍어 먹는 그 쫄깃함이란! 씨쏠트 활어 식당에 가니 런치메뉴로 한치 물회와 새우장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 한겨울에 즐기는 한치 물회! 짜지 않은 간장의 깊은 맛이 쏘옥 베인 새우장! 감사합니다, 사장님.

족발이나 보쌈을 하는 식당은 베가스에도 꽤 있지만 돼지머리 편육, 일명 눌린 머릿고기를 파는 곳은 처음 봤다. 생긴지 오래지 않은 탕,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식당이지만 나는 맛있게 먹었다. 편육에는 뭐니뭐니해도 소맥이 진리. 술 못마시는 사랑하는 언니와 둘이 마주 앉아 홀로 소주를 세 병이나 깠다. 고즈넉한 겨울 밤, 맘 통하는 사람이랑 도란도란 소주파티, 아마도 언니는 좀 지루했을듯ㅎㅎ 분명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돼지머리 편육이다. 돼지 냄새 난다. 술쟁이들은 그걸 즐긴다. 소주 한 잔 탁 털어 넣고 잡내가 아니라 돼지고기니까 나는 특유의 꼬릿한 돼지 냄새! 그 맛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돼지 보고 돼지 냄새 난다하고, 소 보고 소 냄새 난다 하고, 닭 보고 닭 냄새 난다하고…. 잡내와 재료 본연의 냄새조차 구별 못하는 사람들 정말 싫다.

먹고 싶은 음식 실컷 먹었으니 이제는 후식타임, 스윗 몽이란 한인이 운영하는 디저트 가게를 찾았다. 솔직히 잘 몰랐다. 술 마시고 밥 먹고 항상 디저트 카페를 가지만 이렇게 예쁘고 훌륭한 디저트 가게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구글에 Sweet Mong 이라고 서치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다양하고 예쁜 디저트들이 가득했다. 개나리를 닮은 노랑색 의자가 앙증맞다. 이렇게 추워지기 전이라 야외 발코니에서 아아를 한 잔 했다. 잘생긴 젊은 사장님께서 칼럼 쓰는 티나를 알아보시고 대표 메뉴인 마차 크레페를 서비스로 주셨다. 너무 달지도 않고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정말 좋았다. 그 후에도 계속 방문해 싱싱한 과일이 가득 올라간 다양한 크레페와 치즈케익, 핫 스퀴드게임 라떼 등 달콤한 음료까지 모두 섭렵하듯 도장깨기를 하는 중이다.   

집에서 손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어찌보면 일부러 날 잡고 찾아가 먹어야 하는 약간은 개성이 강한 메뉴들. 혹자는 말한다. 베가스에는 김치찌개도 맛있는 곳이 없다고. 누군가는 또 시비걸겠지. 짜요, 싱거워요, 맛없어, 성의없어, 조미료 맛만 나, 비싸, 바뀌었어, 블라블라블라 근데 그거 알아? 나 김치찌개 겁나 맛있게 먹은 곳 몇 군데 있다. 내돈내산이니 홍보하진 않겠음. 나는 맛없어 죽겠는데 이 여자는 뭔데 이렇게 맛있다고 난리지? 왜냐구요? 내 맘이거든요. 내가 먹어 맛있다고 느끼는데 시비 걸지 마시어요. 

미각, 이 얼마나 주관적인 감각인가. 심지어 본인 역시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극심한 차이가 나는 개인의 취향인가 말이다. 110도가 훌쩍 넘는 무더운 베가스 한 여름, 성에가 잔뜩 낀 얼음 글라스에 가득 담아 벌컥벌컥 들이키는 시원~~~한 생맥주 한 잔과 밥을 너무 배 터지게 먹어 짜증 직전의 상태에서 누군가 미지근한 맥주 부어주면 마시라면 그 맛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음식 투고를 하지 않는다. 막 조리된 직후 먹는 맛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맛 없는 곳 있다. 헐 소리 날 정도로 싸가지 없는 서비스로 응대하는 식당 역시 있다. 실망스러워 팁 주면서도 속으로 욕한 적 많다. 그런 경우에는 굳이 내 칼럼에 쓰는 수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

딱 100불 어치 시장을 봐서 쪼개고 쪼개 한 달 이상을 집 밥만 먹기도 한다. 국물 넉넉하게 떡국을 끓여 한 끼 먹은 후, 밥 말아 먹고, 나중에 라면 넣어 먹고 죽까지 끓여 한 3,4일 내내 먹는 약간 그런 식이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은 여자 혼자 와서 왜, 뭐 때문에, 무슨 이유로, 짜장과 짬뽕을 같이 시키지? 한치 물회랑 새우장을 같이 시키지? 분명 혼자 왔는데 왜 2, 3인분을 시키지?? 할 정도로 많이 먹기도 한다. 내맘이니까, 내돈내산이니까, 나의 먹는 즐거움을 대체할 그 무언가를 아직 찾지 못했다. 아이고, 새해도 왔고 다이어트 해야 되는데.. 헬스클럽 회원권 속의 내 사진이 오늘도 나를 찌릿~ 째려보고 있는데… 그래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담배도 끊고 몸 건강하다고 의사 선생님한테 칭찬까지 받은 핑계로 오늘도 어제 먹다 남은 떡국에 물 다시 붓고 고추장 풀고 라면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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