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서슬 퍼렇던 라스베가스의 더위가 한 풀 채 꺽이기도 전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필자의 칼럼의 통해 오랜 기간 깊은 공감을 나눠 오던 ‘Big Fan of Mine’ 중 한 분이 타 주에서 베가스로 1박 2일 여행을 온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정말정말? 진짜진짜?
늘 입 바랜 소리처럼 베가스 함 오세요 하곤 했었다. 진심 기다리긴 했지만 설마 오시겠어? 거리가 얼만데? 그것도 혼자?? 했었는데, 짜라란~~~ 꿈이 현실로 이루어 졌다.
꼭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그녀의 연락은 마치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맞이하듯 설레고 가슴 뛰었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서 첫 대면을 했고 두 여자의 무박 2일 라스베가스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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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이기에 늘 붐비는 공항인데, 벌써 몇 번이나 지인들을 마중나간 익숙한 공간인데, 출발 전부터 룰루랄라 콧노래가 났다. 드디어 그 날이 오기는 오네요 하하~ 지금 비행기 탔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카톡이 든 핸드폰을 보물처럼 손에 꼭 쥐고 Arrival Gate 향했다.
오래 전에 받은 사진 한 장과 이름이 그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사실 성도 몰랐고 카톡 메시지 외엔 전화번호도 몰랐다.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는 얼마인지, 키는 큰지, 미국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게이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내 칼럼에 늘 한결같이 아름다운 댓글을 달아주던 분인데 내 첫인상을 보고 너무 놀라 모른척 하면 어쩌지? 뚱뚱한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지?? 별별 쓸데 없는 상상을 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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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그녀는 나를 한 눈에 알아보고 활짝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눈도 나쁜데다 왠 대학생이 나를 보고 웃지? 했다. 왠 어린 애가 나한테 손을 흔들지? 했다.
그녀였다.
작고 여리고 소녀같은 외모에 심플한 원피스, 세련된 벙거지를 눌러 쓰고 순하디 순한 함박 웃음으로 나를 맞았다. 유일하게 전해 받은 사진 속 우아한 드레스의 여인 대신 예쁜 꼬마 아가씨 같은 이미지의 인형같은 그녀가 내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둔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에 더더욱 헛 웃음이 나왔다. 서로(?)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리는 바로 깔깔대며 두 손을 맞잡고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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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이라 호텔 대신 나와 함께 지내기로 한 터라 바로 집으로 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사실 그녀가 온다고 해 꽤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해 놨다.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고 얼마나 스스로 뿌듯해 했는지 모른다.
짜게 먹는지, 싱겁게 먹는지, 고기를 좋아하는지, 생선을 좋아하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어 그냥 제일 자신있는 백김치부터 갖가지 반찬, 국물에 메인 요리까지 갖은 기교를 다 부려놓은 상태였다. (실제로 그녀는 엄청 싱겁게 먹는 식습관을 가졌다.) 자, 백김치부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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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도 한참을 앉아 수다를 떨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틀 내내 대화만 나눠도 모자라겠다 싶어, 나갑시다! 그래도 베가스 여행인데!! 하고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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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이미지 하면 명품 아웃렛이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론 없다. 아주 오래 전인 20, 30년 전 만 하더라도 구찌나 루비통 아웃렛 정도는 있었는데 지금은 North Premium Outlet에 가면 버버리나 돌체 앤 가바나, 베르사체, 롱샴, 알마니, 페라가모, 카날리 정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몇 년 전에 갔던 프라다도 없어져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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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뭘 살 건 없었지만 아이 쇼핑만으로도 우리는 덥고, 바쁘고, 행복했다. 가녀린 몸에 비해 풍만한(?) 볼륨을 가진 그녀는 드레스 조차 찰떡같이 소화했다. 어릴 적 예쁜 인형에 더 예쁜 드레스를 이것저것 입혀보며 꺄르르 했던 것 처럼 우리는 짧은 시간을 만끽했다.
솔직히 나같은 경우는 살면서 드레스 입을 일이 별로 없는데, 아니 계획조차 없는데 그녀는 직업적으로나 환경적으로 그런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나 역시 내가 입는 것보다 남 입혀주는 걸 더 즐겼기에 우리의 쇼핑 궁합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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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베가스에 Mikiya Wagyu라고유명한 와규 비프 올유캔잇 샤브샤브 집으로 향했다.
베가스 식당의 특이점은 올유캔잇 식당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식 바비큐, 스시는 물론 샤브샤브까지 왜 이렇게 올유캔잇 집이 많은가 했더니 워낙 호텔 뷔페가 활성화 된 지라 일반 식당들도 뷔페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특성화 돼서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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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좋은 와규 비프는 물론 해산물까지 푸짐하다. 특이하게 생새우와 전복에 타이거 새우, 관자에 굴까지 먹을 수 있다. 한가지 단점은 기본 베이스 국물인 Broth가 너무 짜 그녀는 많이 먹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다이어트 한답시고 덩치에 비해 위가 한껏 쪼그라진 상태라 본전을 뽑고 나오진 못했다. 그 점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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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밤이자 마지막 밤이니 저녁을 먹은 뒤 술을 마실까, 호텔 Bar를 갈까, 아님 리무진을 타고 남자 스트립 쇼를 구경갈까 이리저리 망설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다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그녀 역시 베가스를 처음 방문한 것도 아니고 늘 오던 곳이었으며, 나보다 한참 어리긴 하지만 더 다양한 곳을 이미 여행 해 본 후라 차라리 속 편하게 옷 갈아 입고 집에서 한 잔 마시는 걸 택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궁금했고 알고 싶었으며 말이 잘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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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소주를 깠다.
레몬향이 조금 나는 토닉 워터를 더해 소주 하이볼을 마셨다.
처음엔 저녁 먹은 후라 양심 상 간단하게 과일로 시작했지만 가격에 비해, 요란한 메뉴 구성에 비해 저녁이 부실했던 탓에 슬금슬금 안주를 내 놓기 시작했다. 솔직히 준비한 음식을 구경도 못 시켜주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더랬다. 그런데 웬걸, 자그마한 그녀는 음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요, 배불러요, 하면 섭섭할 뻔 했다.
뭐 좀 더 먹을래요? 하면 가차없이 YES를 외쳤다.
음식 준비하느라 약간 고생한 보람이 불끈불끈 샘솟았다. 더 맛있게 먹는 모습이 예쁘기 그지없다.
사실 예전에 술집을 운영할 때 빅 히트를 쳤던 안주 중 하나인 황태채 버터구이를 내 놓았는데 그녀 앞에서 너무 긴장한 탓일까? 짜게 먹는 내 입에도 너무 짰다. 버터가 너무 짰나? 그래서 다시 만들었다. 그래도 짰다. 우리는 짜디 짠 황태구이를 앞에 놓고 한참을 꺌꺌거리며 웃었다. 덕분에 소주 병의 갯수는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몇 가지 다른, 더(?) 짭짤한 안주들을 먹었는데 사진이 없음. 그렇게 우리는 새벽 3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도 그렇게 짠 황태채를 입에 물고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 여행인데 잠 자기엔 좀 아깝지 않아요? 그렇게 우리는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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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시간 뒤 아침 7시에 다시 아침밥을 차렸다. 청국장과 김치찜, 총각김치가 상에 올랐다.
여전히 활발하게 전투적으로 잘 먹는 그녀가 예쁘다 못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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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후 우리는 섬머린에 위치한 Tivoli Village로 향했다. 쇼핑가와 식당가가 밀집한 곳으로 유니크하고 이국적인 다양한 상점들과 독특한 자체 브랜드의 소품, 의류, 가구들로 유명한 소핑몰이다.
그녀의 직접 체험, 나의 간접 체험으로 드레스의 향연은 계속 됐다. 이렇게 많고 아름다운 드레스들을 구경하기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키가 큰 모델 체형이 아니라도, 일명 쭉쭉 빵빵이 아니더라도, 이토록 드레스가 잘 맞을 수 있구나를 실감케 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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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스에 왔으니 뷔페 한 번은 먹어주는 게 국룰.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코스코 폴리탄 호텔의 Wicked Spoon으로 향했다. 잘 안 먹던 아침까지 챙겨 먹은 탓에 1시 반이라는 늦은 시간에 가서 그런지 음식들은 꽤 식어있었고 게다리는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ㅠㅠ 식당 오너 출신으로 음식 불평하는 거 진짜 잘 안하는 편인데 이제 뷔페는 아웃이다. 나이 들어 그런가 잠시 자책해 보기도 한다. 어젯밤의 황태채를 필두로 짠 음식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낄낄대며 그 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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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한 뷔페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베네시안 호텔로 향했다. 둘 다 게임을 하지는 않았지만 명색이 베가스인데 슬롯머신 정도는 땡겨봐야 하지 않을까.(사실 요즘에 땡기는 슬롯머신도 몇개 없지만) 양손에 20불 짜리 지폐를 움켜쥐고 혹시나 터질 지 모를 잭팟의 기대감을 놓지 못한 채 카지노 이곳저곳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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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많고 많은 슬롯머신. 솔직히 베팅하는 법도 잘 몰라 서로 헤맨다. 나 역시 카지노 딜러로 먹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버벅대기는 마찬가지. 젠장, 해 봤어야 뭘 알지. 멋모르고 50불 짜리 넣고 조작 방법을 몰라 48불을 베팅했다 한 방에 잃음. 한동안 서로 얼굴 보고 어이없어 하다 빵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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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블랙잭도 컴퓨터로 한다. 화면 속 예쁜 언니들이 유혹한다. 실제 딜러들은 저렇게 안 예쁜데 하며 게임에 몰두한다. 칵테일 웨이트리스를 통해 잭콕도 한 잔 시켜 먹는다. 여러 종류의 언니들 중 유독 잘 터지는 언니가 있음. 명색이 딜러라 잃었던 돈을 바로 찾았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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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을 찾았으니 집에 돌아와 그녀는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뭐 좀 더 먹을래요? 뷔페로는 성이 안차네요. 물론 YES다. 비행기를 타기 전 떡볶이와 차돌 버섯구이까지 야무지게 먹는다. 이뻐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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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아쉬움과 감동만 실컷 남겨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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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부자다.
실제로 능력있는 남편에 본인은 더 능력있는 직업, 더더 능력있는 아이들까지 정말 부자다.
하지만 그녀는 알뜰했고 검소했으며 겸손했다.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안 들고(집에는 차고 넘쳤지만 여행 온다고, 특히 나 만난다고 일부러 꾸미지 않음) 심플한 원피스에 터덜터덜 편한 슬리퍼로는 그녀의 우아함과 럭셔리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의 몸짓과 말씨, 맵시와 배려심은 그 어떤 명품으로도 커버할 수 없는 귀한 값어치를 뽐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어린 그녀에게 많은 걸 배웠고 몸소 느꼈다.
내 인생 사고방식에 전환점이 되었다면 조금 오바일까?
너무 반가웠고, 많이 부러웠고, 더 없이 행복했고,
스스로 조금은 자책하게 되는 묘한 흥분이 뒤섞인,
나른하고도 바빴으며 함께 있는 내내 따스한 온기가 가득한 여행이었다.
떠난 사람은 몰라도 남겨진 사람은 외롭다 했던가,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만 가득하다 했던가…
그녀가 남긴 작은 편지 두 장과 함께 나는 그렇게 다시 혼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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