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라스베가스가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캐롤에 취해, 알록달록 반짝이는 불빛에 취해, 푸짐한 선물 보따리에 더 취해

흥청거리는 젊은이를 보는 재미, 망청거리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는 덤이다.

본의 아니게(?) 카지노에서 일을 하다보니 세상 살면서 내가 별로 알지 알아도 될 일을 겪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작가적 상상력을 제 아무리 동원해도, 예전에 욕하면서 본다는 아침 드라마 작가가 되고자 별별 쓸데없는 주제를 끄적거려 봤어도 미처 이런 상황까지는 감히 If, If, If 조차 생각지 못했던 희한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주위에 차고 넘친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요즘, 따스하고 푸근한 분위기만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내가 직접 보고 겪은 크리스마스 즈음의 사건 사고(?)들을 한 번 들여다 보자.

20살 어린 여친과 결혼한 50대 재벌남

이런 뻔한 이야기가 뭐 그리 큰 이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아니다, 좀 더 들어보시라.

큰 키에 탄탄한 체격, 옅은 구릿빛 피부에 호남형 인상의 백인 그 남자는 외모만 보면 딱 내 이상형이었다. 거기에 몇 개의 IT 기업을 운영하는 신흥 재벌, 또 거기에 팁을 퍽퍽 퍼주는 배포!!

일년에 몇 번씩 베가스를 그것도 꼭 우리 호텔만 방문하는 그 사람은 일명 조지 아저씨였다.

여기서 조지 아저씨란 도박을 크게 하면서 팁도 막 뿌리는 고마우신 분, 평소 200불이 채 안되는 팁을 받다가 이 분이 다녀가면 1,000불 팁도 하루에 가능한, 몇 백명의 딜러들이 24시간을 3 교대로 1/N 팁을 나누는 구조이니 조지 아저씨 혼자 쓰는 팁만 하루에 거의 몇 만불이 된다는 말이다.

내 또래인 그 남자는 전용 비행기에 개인 비서와 함께 다니며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시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청바지에 실크 와이셔츠를 즐겨 입으며 돈을 마구 뿌려 대는 사람이다. 게임 하려고 테이블에 앉기만 해도 모든 딜러들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는, ‘그 남자 게임한대! 야홋!! 오늘은 또 팁이 얼마나 나올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감사한 존재였다.

여기서 포인트는 하루 밤에만 1, 2억씩 가뿐하게 게임하다 가는 그 남자 곁을 지키던 개인 비서가 바로 여친이었던 것. 나이 20살 어린 건 그렇다 치더라도, 외모로 절대 사람 판단하지 말자던 굳은 각오는 또 그렇다 치더라도, 저 정도 사이즈의 재벌과는 전혀! 결단코! Never!! 어울리지 않는 수수하다 못해 촌스러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우리가 평소 상상하던 거대한 유방 확대술에 성형 괴물까진 아니어도, 예쁘지만 막 무서운 얼굴 정도의 쭉쭉 빵빵 여친을 쉽게 떠올릴 필요까진 없더라도, 진짜 비서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던 그녀는 상상을 초월하는 못생김(?)을 장착했다. 으이그, 니가 몰라서 그렇지 진짜 부자들은 다 저런 여자랑 결혼해. 연애는 미스코리아랑, 결혼은 시골 처녀랑, 몰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근데 내가 알던 진짜 부자들도 저런 여자랑은 결혼 안하던데…….whatever……

아무튼 그 남자는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이 리밋 라운지(큰 돈을 베팅하는 플레이어들 전용 게임 공간) 안에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괜히 호텔 직원들만 고생시키며, 부산스럽게 꽃이며 풍선이며 급하게 세팅한 장소에서 이따시만한 다이아반지를 건네며, 무릎을 꿇었다. 우스개 소리로 몇몇 여자 딜러들은 저 정도면 나도 도전!!해 볼 수 있겠는데 하는 비아냥을 뒤로 한 채 그들은 호텔 총 지배인과 경비들의 엄호(?)를 받으며 나름 행복한 미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 얼굴을 비치며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던 그 남자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너무 궁금해 담당 호스트에게 물었다. 우리의 조지 아저씨 요즘 왜 안보이냐고, 요즘 팁이 궁상인데 우리의 조지 아저씨 왜 행차 안하시냐고 말이다.

감옥에 있단다. 

감옥? 그 서슬 퍼런 미국 감옥? 왜? 결혼한지 몇 달 안 되잖아? 사업이 망했나? 도대체 왜???

바로 개인 비서였으며 여친이었다가 와이프가 된 그녀에게 총을 겨누어서 살인 미수 죄로 현재까지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촌스럽고 천진 난만하게 못생겼던 그녀는 결혼 직 후부터 그 남자의 돈을 빼돌리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하다하다 몰래 그의 시계들까지 팔아 넘겼다는 것. 그 사실을 알고 격분해 부부 싸움 끝에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아이고 병신아, 여자가 그 정도면 충분히 고소하고 결혼 무효하고 차라리 멍청한 예쁜 여자나 다시 찾을 것이지, 워낙 잘 욱하는데다 다혈질적인 성격이라 화를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총구가 그녀를 향한 게 아니라 벽인지 천장인지를 향했다고는 하나, 상대가 털 끝 하나 다친 곳은 없다고는 하나, 여기가 어딘가? 여자나 아이를 막론하고, 혹은 상대가 생판 모르는 남이라고 해도 손가락 하나 잘 못 건드렸다간 황천길 가는 게 미국 아니던가? 게다가 법적 와!이!프!! 

물론 예전에 와이프 살해 혐의를 받는 풋볼 선수 ‘오제이심슨’ 사건처럼 돈으로 유능한 변호사를 사면 무죄를 받을 확률도 없진 않겠지만 그 때는 부인이 살해 된 경우이고 지금은 상처 하나 없이 오직 팩트의 과정만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모든 상황은 양 쪽 의견을 다 들어 봐야겠지. 하룻 밤 떨어지는 몇 백불의 팁 때문에 무조건 그 남자의 편을 들자는 건 아니다. 아무리 돈을 빼돌렸다고 해도 사람에게 총을 겨누는 행위 자체가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건 더더군다나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돈을 빼돌리고 남자의 보석과 시계를 몰래 처분하려 했던 건 사실 아니던가. 어쨌거나 여자가 학대를 받았는지, 아니면 너무너무 복에 겨워 사이코 짓을 했는지 또한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당사자만 알고 있을 뿐.

다만 전도 유망한 사업가였던 그는 잘못된 크리스마스의 프로포즈 하나로 인생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16살 아이를 아들로 호적에 입적한 23살 싱글남

몇 년 전 23살이었던 그는 나이에 걸맞게 쌩총각이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의 식음료 팀장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젊은 나이에 꽤 빠른 승진을 하게 된 그냥 평범한 남자였다. 외모는 딱 윌리를 닮았다. 맞다, ‘윌리를 찾아라’라는 카툰 이미지 속의 그 윌리 말이다.

마켓에서 쌩뚱맞은 술을 찾던 나에게 너무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던 쌩총각과 나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구글 리뷰도 짱짱하게 올리고 코리안 바비큐 먹어 봤냐며 갈 때마다 스몰톡을 주고 받으면서 내 딸과 비슷한 나이 대라 무지하게 서로를 반가워하는 사이가 됐다. 열심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는 그의 모습이 대견하고 예뻤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마켓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게 앞 휴지통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16살 소년을 처음 만났단다. 캘리포니아처럼 막 심각한 상황까지는 아니어도 베가스이니만큼 노숙자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그가 판단하기에도 노숙자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어리고 멀쩡하게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차림새가 많이 더럽고 늘 배고파 했던 기억이 난다고.

16살 소년의 스토리 또한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인생 막장 스토리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생아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고아원과 보육원을 떠돌다가 그 곳에서도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출생 신고서마저 없는 일명 서류 상 존재하지 않는 무국적자인 것이었다. 미국에도 그런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학교도 사회 생활도 할 기회가 없다보니 밥을 먹기 위해 살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불쌍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 두번 끼니를 챙겨주다보니 둘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고 쌩총각이었던 그는 소년을 살리고자 선택한 방법이 바로 입양이었다. 출생신고서 조차 없는 소년에게 법적 신분증을 발급하고 제대로 된 삶을 주기 위해선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7살 많은 아빠가 되기로 스스로 자처한 것이었다.

그 과정 역시 녹록치 않았다. 출생의 히스토리가 없고 증거도 없으며 나이 차도 7살 밖에 나지 않는데다 싱글인 젊은 남자 혼자 아들을 입양한다는 게 생각처럼 간단한 절차만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각 정부 기관을 직접 발로 일일이 쫓아다니며 별별 서류를 다 준비해 결국엔 아들로 입양하는데 성공한다. 

그 소년은 지금 딜러 학원을 다니며 미래의 카지노 딜러를 꿈꾸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소년의 21번 째 생일을 우리 호텔에서 소박하게 자축했는데 영화같은 스토리에 감명받은 나는 그리 비싸지 않은 양주 한 병을 선물로 건네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빠와 아들이라고 막 심하게 감동 받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반짝이던 소년의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은 바로 그 싱글남이 게이였다는 것이다. 게이가 뭐 어때서? 게이면 23살에 16살 소년을 아들로 입양 못해?? 하면 역시 할 말은 없다. 분명 순수한 마음에서 도와준 거라 굳게 믿는다. 그는 원래 웃는 얼굴에 마음씨도 착하고 상냥하며 주위 사람들과도 친절하게 잘 어울리는 훌륭한 청년이었기에…. 게이라고 모두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원베드에 둘이 사는 모습을, 사생활까지 들척거리며 뭔 짓을 하고 사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근데… 그 잘생긴 소년도 게이란다.

………. 여기까지.

돈 만불에 이혼한 크리스마스의 악몽

카지노 딜러를 하다 보면 매일 같은 테이블에서 딜러를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테이블을 돌아가며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데 그 날은 테이블 중에도 가장 한가한 스타디움 룰렛(딜러가 서서 룰렛 스핀을 돌리고 플레이어는 컴퓨터로 베팅 하는 게임)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연말인데도 꽤 한가한 날이었다. 한없이 지루한 나는 자연스레 바로 코 앞에서 슬롯 머신을 하는 사람들을 쳐다 보는 일 외엔 딱히 할 일이 없었는데, 순간 게임에 집중하던 한 여자의 입에서 Oh My God, Oh My, God, Oh My God이라는 단어가 거짓말 조금 보태 몇 백번은 흘러 나왔다. 아이고, 또, 한, 200 불은 맞았나 보네. 늘 있는 일이기에 심드렁했다. 되게 시끄럽네, 툴툴대며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남편과 둘이 베가스를 찾은 30대의 이쁘장한 그녀는 재미 삼아 싸구려 저렴한 1센트짜리 슬롯 머신에 Max Bet, 한 번에 걸 수 있는 최고 금액인 1불 50센트씩 베팅하다 덜컥 만 육천 불에 당첨이 됐다. $16,000!!! WOW, 제 아무리 돈이 차고 넘치는 베가스라지만 슬롯 머신에서 $16,000에 당첨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급하게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헐레벌떡 단숨에 달려 왔다. 

둘은 얼싸안고 방방 뛰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쳐다 보는 나 역시 부러움 반 질투 반, 돈이 부러웠는지 저렇게 함께 좋아해주는 남편이 질투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텍스는 나중에 떼기로 해 고스란히 $16,000을 손에 쥔 그녀. 500불 팁까지 돈을 가져다 준 슬롯 어시스턴트한테 후하게 건네고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까지 함께 찍은 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나 싶었다.

보통은 머신에 당첨되면 돈을 가지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나는 게 대부분인데 웬일인지 부부는 아직도 머신 앞에 앉아 있다. 한가한 날인데다 바로 코 앞이라 다 들릴 수 밖에 없었다. 요점은 남편이 절반인  $8.000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부터이다.

그 상황까지는 못봤지만 그녀는 이미 50불을 잃었었고 돈이 떨어지자 지나가던 남편이 100불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고 간 것. 그 100불이 터진 것이다.

아직까지는 웃으며 말이 오갔다. 

“내가 준 돈이 된 거잖아, 절반을 줘.” “무슨 소리야, 내가 하다 된 건데 왜 절반을 줘?” “그럼 하나도 안 주겠다는 말이야?” “누가 하나도 안 준대? 나중에 세금도 내야 되고, 팁도 벌써 줬고, 내가 베가스 오자고 했으니까 잠깐만 생각해 볼게.” “생각?? 그럼 세금 빼고 팁 빼고 오천불만 줘.””오천불? 다 내 이름으로 수입 잡히고 내 돈으로 세금 낼텐데, 그건 아니지.” 대충 뭐 이런 내용이었다.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니가 돈을 더 버네, 내가 돈을 더 버네, 니가 생활비를 더 쓰네, 내가 더 쓰네, 니가 애들은 하나도 케어 안 하네, 내가 다 하네 부터 가족까지 건드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서로에게 인신공격을 하기에 이른다. 슬며시 지어졌던 미소는 온데간데 없고, 부러움과 질투심은 내팽겨친지 오래고, 불안하고 또 한 편으론 흥미진진한 마음에 가슴까지 콩닥인다. 그냥 조금씩 서로 양보하면 될 일을 남자가 그동안 포커 룸에서 얼마를 잃었네, 여자가 쓸데없는 쇼핑을 얼마나 했네 하며 점입가경으로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결국 카지노 경비가 출동을 하고 둘은 쫓기듯 밖으로 몰려난 뒤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여자 혼자 다시 찾아와 그때 찍은 사진을 없애 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호텔 측에 했다고 전해진다. 슬롯에 당첨되면 사진을 찍고 호텔 홍보용으로 조그만 전광판 같은데 주구장창 나오는데 둘이 함께 찍은 그 사진을 내려달라는 요청이었다. 더 이상 얼굴 팔리기 싫다고. 결국엔 이혼을 했다며 말이다. 세금 떼고 경비 떼고 나면 고작 손에 쥐어지는 그 만불 때문에 말이다.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끊긴 카지노 딜러

그 남자는 너무 말랐다. 한 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베가스 호텔 안 직원 중 하나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저 얇은 다리로 서 있는 게 용하다 할 정도였다.

내 또래인 50대 중반의 그 남자는 말이 없었다. Shift가 달라 딱히 서로 말을 건넬 이유도 없었지만 그 누구에게나 건네던 Hi 라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고립된 사람이었다.

딱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Shift를 시작하기 전 카지노를 향하기까지 잠시 앉아 있는 직원 휴게실 안에서 제일 구석 자리를 선호했던 그와 나였다. 보통은 그가 일어나면 내가 가서 앉곤 했는데 의자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 정도로, 저 사람에 비해 내 궁뎅이는 얼마나 무거울까, 불쌍한 의자 같으니.. 할 정도로 안면만 있는 상태였다.

여느 때처럼 시작된 하루, 한가한 연말, 플레이어가 없어 딜러들끼리 자잘한 농담을 나누고 있던 어느 추운 날, Shift Manager가 와서 전한 한마디.

그가 죽었단다.  

왜? 어떻게? 뭐 때문에?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 살다보니 누가 죽었다는 부고를 들어도 웬만하면 이유는 모른다. 알아도 얘기해 주지 않는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말이다. 예를 들면 병 때문에 죽어도 그냥 죽었나보다 하지 무슨 병인지, 어떻게 죽음에 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한 관심은 절대 두지 않는다. 우리 같았으면 사돈의 팔촌, 인터넷 수사대까지 총 동원해 시시콜콜한 이유까지 다 밝혀 냈을텐데 말이다. 처음엔 그런 문화에 적응하는 게 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친숙한 사이라면 알음알음으로 원인에 대해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겠지만, 혹여 누가 유방암으로 죽었더라도 전이 때문인지, 항암 부작용 때문인지, 아니면 자살인지 조차 알 방법이 없다.

아무튼 완전 싱글인 그의 경우에도 정확한 사인은 모른다. 다만 몇 년 전 큰 교통사고가 났는데 그 후유증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페이먼트를 내기 위해 할 수 없이 2주 만에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게 원인이 되어 자다가 심장마비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난무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3일째 No Call No Show, 아무런 연락없이 일을 나오지 않은 것이다.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새벽반인 경우 가끔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늦잠을 자 노콜노쇼를 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전화없이 일을 안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다른 직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호텔은 딱 3일이 지나면 경찰을 부른다. 이틀까지는 지켜보다 3일 째가 되면 경찰이 집을 방문해 생사를 확인한다. 그렇게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혼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내가 주책맞은 이 나이에도, 같이 살 남자를 찾기 위해 끊임 없이 도!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주위에 일가친척 하나 없이 혼자 외롭게 살다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지 며칠이 지나서 낯선 경찰에게 발견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혼자 가 버리기엔 나이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겸연쩍게 미안해 하던, 채 식지않은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의자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있다.

크리스마스는 아무 이유없이 그냥 설렌다. 캐롤도 짜증나고 트리의 반짝거림도 가끔은 짜증날 때 있지만 아~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괜스레 분위기에 취해 감정에 취해 쓸데없는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가슴 한 구석이 뜨끈해지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지독한 악몽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것도 불빛 찬란한 라스베가스 한 복판에서 말이다.

평생에 한 번을 안 겪어도 될 일을 누군가는 지독한 열병처럼 앓아내며 오늘도 베가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제 멋대로 고요하고 지저분하게, 

지 맘대로 흥청망청 잔잔히 흘러가는 중이다.

철저하게 고립되어 주위에 아무도 없이 덜렁 혼자인 사람에게도,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서 술에 취해 캐롤에 취해 몰려 다니는 사람에게도,

악몽같은 크리스마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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