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름도 생소한 ‘틸트 테이블 테스트’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볼까 한다. 

나이를 먹는 것도 서러운데 몸 이곳 저곳에 이상이 생기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 중 심혈관 질환이나 신경계 재활 센터에서 주로 사용되는 틸트 테이블, 한국말로는 경사 침대에 관한 것인데 내돈 내산, 필자가 직접 경험한 체험담이라 누구 단 한명에게 만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개해 본다.

오래된 만성 질병 갑상선 항진증=====

미국에 정착한지 채 2년이 되지 않아 발병한 갑상선 항진증이라는 병명은 흔히 말하는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환으로 대부분이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갑상선 암은 절대 죽지 않는 암’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흔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환자가 겪는 고통은 결코 쉽거나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괴롭고 심각하다. 세상에는 무시해도 좋을만큼 약한 질병은 없다. 갑상선 정도 가지고..하는 선입견이 있다면 지금 당장 깨버리기 바란다. 내 와이프가, 내 엄마가, 내 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싶다면 말이다. 

10년 가까이 갑상선 항진증을 앓아서인지 사실 필자 역시 치료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의사 진료에 적극적이지 않다거나, 약을 제때 먹지 않고 건너뛴다던지, 서랍 속에 갑상선 약 한 통만 대기하고 있다면 뭐 죽기야 하겠어 라는 심정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 참 되게 안 듣는 나쁜 환자였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정기적으로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다. 주로 일하다가 갑자기 발병하는데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시도 때도 없는 무서운 증상=====

가장 황당한 상황이 뭐냐면 바로 바로, 멀쩡히 잘 있다가 갑작스럽게 증상이 나타나는데 사람 미치고 팔짝 뛴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출근 룰루랄라 잘 하고 이곳 저곳 다니며 늘 그렇듯 오지랖 넓게 재미있게 수다 떨다 갑자기 증상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덩치나 작나, 안색이 나쁘길 하나, 몸매가 나약하기를 하나, 남들에게는 단연코 튼실하게 보이는 몸무게임에도 불구하고 전조 증상 하나 없이 갑자기 휘청거리며 당장 죽을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니 환자인 나조차 황당하고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가장 먼저 머릿 속이 하얘지고 시야가 뿌옇게 된다. 어? 이게 뭐지 함과 동시에 심장 박동이 내 귀에 들릴 정도로  빨라지고 땀이 비오 듯 쏟아진다. 온 몸이 덜덜 떨리면서 특히 목 뒤쪽과 손끝, 발끝에 마비가 오는 걸 느낀다. 숨을 못 쉰다. 헉헉 대며 휘청거린다. 사시나무 떨 듯 떤다. 얼굴이 하얗게 백지장처럼 변한다. 옆에서 걱정하는 사람들 소리가 웅웅 들린다. 나 이러다 중풍으로 쓰러져서 못 움직이는 거 아니야? 라는 걱정이 들면서 정신을 잃기도 한다.

결국에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다=====

하지만 더 웃긴 건 뭐냐면 정신을 잃기 전 바로 눕거나 쉴 곳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괜찮아 진다는 것이다. 옆에서 바로 알아 채 괜찮아? 하고 묻는다. 운 좋게 바로 밖으로 피신(?) 해 차 안에 잠시 누워 있으면 증상이 호전된다. 바로 집으로 가 몇 시간만 앓고 나면 바로 배고파 진다. 금방 죽을 것처럼 벌벌 떨던 사람이 조금 지나지 않아 다시 헤헤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니 나도 민망하고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어디 가서 아프다고 명함 내밀기도 민망하다.

여기서 벌어지는 가장 큰 실수!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몇 번 반복하다보니 급기야는 2년 전, 비싼 미국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에 이른다. “괜찮아, 갑상선 때문에 그래. 약 제때 안 먹으면 가끔 이래, 조금 누워 있으면 금방 괜찮아져, 별 거 아니야” 하다가 하다가 결국에는 풀 커버리지 직장 의료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만 불의 병원비가 청구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병원비 때문에.

갑상선이 원인이 아니었다니=====

응급실에 도착하니 또 다른 신세계가 펼쳐진다. 전 세계 모든 인종이 모여 있는 듯 한 다양한 의료진들이 3일 내내 물도 안주고 밥도 안주고 검사만 주구장창 한다. 심전도나 피검사는 물론이고 엑스레이, CT, MRI까지 어마무시한 비싼 돈 들어가는 모든 검사를 핑계(?) 김에 전부 다 한다. 영어 좀 한다고 자부했는데 도대체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검사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이 방 저 방, 침대에 실려 다니며 검사만 했다. 그래도 원인만 알 수 있다면 좋겠다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사실 쓰러지기 며칠 전부터 입맛이 없어 이틀간 굶다시피 했는데 응급실에 있는 3일 동안 물도 안 주니 정말이지 배고파 죽을 뻔한 기억밖에 없다. 물 좀 주세요, 밥 아니 빵 한 조각이라도 좀 주세요, 아무리 애원해도 다음 검사를 해야 한다며 무조건 기다리란다. 정말이지 뛸 힘만 있었다면 단연컨대 나는 응급실을 탈출했을 것이다. 배고파서 말이다.

더 황망한 건 모든 검사 후 의사가 던진 한마디, 담배 끊으세요 라며 멜라토닌(미국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수면 보조제) 달랑 하나 처방해 준게 끝이었다.

혹시 나도 공황장애가 아닐까?=====

그러고도 나는 응급실을 두 번 더 실려 갔다. 하지만 똑똑한 나는 응급실 입구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증상을 묻는 진단 의사에게 “이런 경험이 있다. 별 검사 다 해봤는데 이상이 없다. 그냥 정기적으로 숨 못쉬고 쓰러진다. 집에 가면 괜찮다.” 하며 응급실 입구 앞에서 매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 않게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었다. 내가 조금만 말랐다면. 내가 조금만 여리 여리한 스타일이었다면 또 몰라, 이 덩치에 이 체격에 도저히 매번 일하다가 쓰러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득, 응급실을 퇴원하기 전 운 좋게 만난 젊고 잘생긴 한국인 의사가 한 말이 기억났다. “나이 40 넘어 홀로 혈혈단신 미국에 살며 혹시 스트레스 같은 거 없었나요?” “없겠습니까? 그나마 나 같은 성격이니 견뎌내지 보통 사람 같았으면 자살했거나 미쳤거나 분명 둘 중 하나였을 겁니다” 라고 낄낄대며 같이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미국은 공황장애에 대해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국은 그나마 많은 연예인들이 경험하며 공론화 된 게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큰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는 듯 했다. 혹시 내가 공황장애 혹은 불안장애 같은 정신병의 일종이 아닐까? 정답은 내가 가장 신뢰하는 든든한 나만의 주치의 문장석 내과의 원장님께 듣기로 했다. 

심장 모니터->심장 초음파->틸트 테이블=====

문정석 내과 원장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환자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함께 공감해 주신다는 점이다. 그 바쁜 진료 시간에도 꼼꼼히 환자의 말을 다 듣고 경청해 주며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분명 필자보다 나이는 어리시지만 자꾸 의지하게 되고 심지어 아프다고 징징대기 까지 한다. 그래도 끝까지 침착하게 환자를 진정시키고 위로해 주신다. 지면을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무튼 문장석 원장님의 의견은 갑상선이나 공황장애 때문에 자꾸 쓰러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심장 쪽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우선은 간단하게 심장 모니터를 가슴 중간에 붙이고 일주일간 평소대로 생활하며 검사를 진행했다. 신기하게 샤워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수시로 가슴이 빨리 뛰거나 숨 쉬기 힘들면 작은 수첩 다이어리에 메모도 할 수 있다. 그 결과를 가지고 원장님은 내 나이에 비해 심장 쪽에 약간의 이상이 보인다며 심장 초음파를 권하셨다. 

병의 원인을 반드시 밝혀내고야 말겠다=====

문장석 원장님이 주신 리퍼 종이 한 장을 달랑 들고 사이먼 메디케어 이미지 센터로 가 심장 초음파를 받았다. 직장 의료보험 덕에 디덕터블까지 보험회사에서 주는 데빗카드로 결제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케이스가 다르기에 검사비가 얼마인지 멍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초음파 검사 전 보험회사가 지불해야 하는 것 말고 내가 내야 하는 300불 가까운 돈도 보험회사  데빗카드로 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의사는 당연히 만날 수 없고 테크니션이 약 30분 동안 심장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초음파했다. 제 아무리 모니터를 들여다 봐도 우리는 뭐가 뭔지 모른다. 중간에 슬쩍 초음파에 무슨 이상이 나오느냐 묻자 자기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며 나중에 의사한테 연락이 올 거라고만 말한다. 흑백으로만 보이는 모니터에 자꾸 클릭을 하자 조금 불안해 졌다. 무슨 나쁜 징조가 보여 저렇게 많이 클릭을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당연히 특별한 전문의는 미국에서 만나기 힘들다는 것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한국과는 달리 테크니션만 만나고 오니 쬐끔 섭섭한 감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심장 전문의를 만나다=====

심장 초음파에서도 이상 소견이 보여 (문장석 원장님이 협심증인가 뭔가 원인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덜렁대는 성격 탓인지 나이 탓인지 다 까먹음) 더 큰 병원의 심장 전문의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라스베가스에서도 유명한 마운틴 뷰 병원 내에 위치한 심장 전문 병원을 찾았다. 내 증상을 자세하고 꼼꼼히 듣던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자꾸 쓰러지는 원인을 찾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며 틸트 테이블 테스트를 하라고 오더를 내렸다.

틸트.. 뭐요?? 난생 처음 듣는 테스트였다. 구글에 찾아보니 쉽게 말해 특별히 제작된 침대에 환자를 눕힌 후 서서히 똑바로 세워  90도 경사를 지게 한 후에 실신하는 원인을 찾아내는 검사방법이었다. 병원에 갈 때는 반드시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다. 혹시 검사 후에 실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실신, 기절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무섭고 뭐가 뭔지 헷갈렸다. 이 사람들, 나를 검사하면서 기절이라도 시킨다는 말인가? 도대체 들어 본 적도 짐작도 가지 않는 테스트였다.

틸트 테이블 – 왜 자꾸 기절하는지 밝혀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덩치에 자꾸 기절하는 내 자신이 짜증나고 속상해서 문장석 원장님의 ‘반드시 원인을 밝혀 내리라’는 굳은 의지 하에 눕게 된 틸트 테이블 테스트!! 심장 전문의가 있는 같은 마운틴 뷰 병원의 검사실로 향했다. 병원의 내부는 밖에서 보이는 웅장함 보다는 친근하고 아기자기했다. 1층 로비에는 환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있고 안내 데스크가 보였다. 그 곳에서 접수를 하는데 보험 커버 말고 환자가 내야 할 돈이 천 이백불이었다. 깜짝 놀랐다. 순간 너무 비싸서 바로 집으로 유턴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나중에 검사비를 우편으로 받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결제하면 천불로 깎아준다는 말에 혹해 그냥 하기로 했다. 내 피같은 천불 흑흑. 틸트 테이블 검사 장소로 가니 천불이 안 아까울 정도로 너무도 친절한 간호사들이 나를 맞았다.

틸트 테이블 검사 전, 커튼이 쳐진 여러 침대 중 한 곳으로 이동해 정맥주사를 맞는다. 나중에 메인 틸트 테이블 검사를 할 때 이 주사를 통해 약물이 주입된다. 무슨 약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주사를 놓던 남미계 남자 간호사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자 유창한 솜씨로 안녕하세요 한다. 어디서 배웠느냐 깜짝 놀라자 갈비, 불고기 좋아요를 필두로 한국 드라마, BTS 얘기까지 술술 쏟아낸다. 알고 봤더니 한국 드라마 팬이라 음식이나 언어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덕분에 도대체 무슨 검사인지 몰라 불안하던 마음은 없어지고 화기애애 해졌다. 

알약 하나에 정신을 잃다=====

본 검사인 틸트 테이블 테스트 장소에 도착하자 무슨 우주선 내부 같이 으리으리한 장비들이 가득한 검사실 한 쪽에 외롭고 초라한 침대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 침대가 바로 내가 누울 틸트 테이블이라는 것이었다. 아까 정맥 주사를 놓던 간호사보다 더더욱 친절한 2명의 간호사가 양 쪽에서 가슴 곳곳에 심전도 검사를 위한 장치들을 붙인다. 큰 모니터로 내 혈압과 심박수가 실시간으로 가파르게 그래프로 나타난다. 그리고는 다시 정맥 주사기 안으로 약물이 들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슴과 배, 그리고 다리 쪽에 못 움직이게 벨트로 고정을 하고 누워 있던 나를 서서히 90도로 정확히 세운다. 발바닥은 발판에 확실히 닿아 있다. 그렇게 요상하게 선 상태로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상태가 어떤지 괜찮은지 수시로 묻고 체크한다. 검사실이 좀 추워 담요를 덮고 말똥말똥하게 서 있는다. 20분 쯤 지났을까? 간호사가 알약 하나를 내 혀 밑으로 넣는다. 뭐냐고 묻자 협심증 약인 니트로 글리세린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뭔지 들어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알약이 바로 혀 밑에서 녹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 지고 몸이 덜덜 떨리며 예전의 증상이 잠시 나타났다. 2명의 간호사가 바로 옆에서 부축하며 정신 차리라고 계속 말하자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그 작은 알약 하나가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호자 동반이 없으면 이 검사를 안하는 이유를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15분 쯤 후 회복실로 옮겨졌다. 의사 말로는 40분 정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 쓰러질 때도 늘 그랬듯이 곧 배가 고파져 간호사를 살살 꾀어 20분 만에 병원을 나왔다. 차를 타자 약간의 어지럼증은 있었지만 심각하지 않고 이내 좋아졌다. 단 집으로 돌아온 후 몇 시간 동안 꿀잠을 자게 되었다는 사실.

이제 2주 후면 틸트 테이블 테스트 결과로 심장 전문의를 다시 만나는 팔로우 업 예약이 있다. 아직 결과는 모른다는 말이다, 하하하. 아무튼 신기하고도 검사 중 내가 왜 알약 하나에 쓰러졌는지도 모른채 모든 틸트 테이블 테스트는 끝났다. 몸 아프면 나만 고생이라더니 정말 고생이 맞다. 하지만 원인을 반드시 밝혀 내고야 말겠다는 감사한 의료진들이 있어 든든하다. 늦은 나이에 미국에서 의료보험 때문에 원치 않는 직장을 다닐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감사 하면서도 작은 한숨이 새어 난다. 제발 별일 없기를! 더 이상 쓰러지지 않기를!! 병원비는 천불에서 이제 그만 끝나기를!!! 말이다.